노무사로 일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 중 하나는, 목소리는 있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을 힘이 없었던 하청노조를 만났을 때입니다.
분명 그들만의 절박한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있었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큰 틀에 묶여 번번이 좌절됐죠. 하지만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교섭단위 분리' 제도입니다. 제가 직접 자문했던 A사 사례를 통해 이 제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고 명확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뒷전"… 교섭창구 단일화의 그늘과 한계
도대체 '교섭창구 단일화'가 뭐길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들어보셨나요? 법률 용어라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간단합니다. 하나의 회사(사업장)에서는 단 하나의 교섭대표노조만이 회사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여러 노조가 각자 회사와 교섭하면 너무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니, 대표를 하나로 통일해서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됐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다수의 목소리가 소수의 절박한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사례 분석] 제가 만난 A사 하청노조의 눈물
제가 자문했던 A사에는 두 개의 노조가 있었습니다. 정규직 중심의 원청 노조, 그리고 제가 맡았던 청소·시설관리 하청노동자 노조였죠.
"노무사님, 저희는 임금 10% 인상보다 지금 당장 낡은 환기 시설 교체랑 제대로 된 휴게실이 더 급해요. 화학약품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라 과반수 노조였던 원청 노조가 교섭대표권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기본급 중심의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률 확대'였습니다. 하청노조의 '안전한 작업환경'과 '최소한의 휴게 공간 보장' 요구는 "나중에 논의합시다"라는 말과 함께 교섭 안건 후순위로 밀려났고, 결국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교섭권을 위임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겁니다. 그들의 존재는 지워졌고, 단체협약서에는 그들을 위한 조항이 단 한 줄도 추가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열다: '교섭단위 분리' 제도의 모든 것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바로 '교섭단위 분리' 제도입니다.
교섭단위 분리, 쉽게 말해 무슨 뜻인가요?
쉽게 말해, 같은 회사 안에 있더라도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가 있거나 '고용형태'가 다르고, 기존 교섭 방식으로는 그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독립된 협상 테이블을 차릴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락해 주는 제도입니다.
하청노조가 원청 노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사용자인 하청업체와 직접 자신들만의 문제를 놓고 교섭할 수 있는 문이 열린 셈이죠. 이 신청은 각 사업장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할 수 있으며, 결정에 불복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관련 정보: 중앙노동위원회 결정례 검색 페이지
[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나? 교섭단위 분리 전 vs 후
| 구분 | 교섭단위 분리 전 (창구 단일화) | 교섭단위 분리 후 |
|---|---|---|
| 교섭 주체 | 교섭대표노조(주로 다수 노조) 1곳 | 각 노조가 독립적으로 교섭 주체가 됨 |
| 핵심 교섭 의제 | 다수 노조의 요구사항(예: 임금)이 중심 | 각 노조의 특수한 요구사항(예: 하청의 작업환경)이 핵심 의제가 됨 |
| 교섭 영향력 | 소수 노조는 의견 개진에 한계 | 소수 노조도 독자적인 교섭권을 행사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음 |
| 단체협약 적용 | 모든 노조에 동일한 협약 적용 (소수 노조에게 불리한 경우 발생) | 각 교섭단위별로 별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맞춤형 적용 가능 |
어떤 경우에 '분리'가 인정되나요? 핵심 판단 기준
노동위원회는 다음 3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교섭단위 분리를 결정합니다.
-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임금체계(시급제 vs 월급제), 복리후생, 근무 장소, 업무 내용 등이 본질적으로 다른가?
- 고용 형태: 정규직, 계약직, 파견, 하청 등 고용 형태가 명확히 구분되는가?
- 교섭 관행: 과거에 별도로 교섭한 관행이 있었는가? 혹은 창구 단일화 이후 소수 노조의 이익이 제대로 대변되지 않았는가?
A사 하청노조의 경우, 정규직과 완전히 다른 임금체계(시급제), 별도의 작업 공간과 업무 내용, 그리고 기존 교섭에서 그들의 요구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점이 결정적 증거가 되어 교섭단위 분리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논쟁: 노동계 vs 경영계 핵심 쟁점
물론 이 제도를 둘러싼 시각차는 큽니다.
노동계: "진정한 교섭 민주주의의 시작"
노동계는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하청·비정규직 등 다양한 노동자의 특수한 근로조건을 개선할 중요한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환영합니다. 특히 이는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의 책임 문제를 공론화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습니다.
- 관련 포스팅: 원청의 사용자성, 어디까지 인정될까?
경영계: "산업 현장의 혼란과 갈등 증폭 우려"
반면 경영계는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여러 노조와 동시다발적으로 교섭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노-노 갈등 및 노-사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섭 비용 증가와 그로 인한 경영 안정성 저해를 걱정합니다.
(실용 정보)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하청노동자 필독] 교섭단위 분리를 위해 꼭 알아야 할 3가지
- 우리만의 '다름'을 입증하라: 가장 중요합니다. 근로계약서, 임금명세서, 취업규칙을 정규직과 비교 분석하고, 작업환경 사진이나 동영상 등 객관적인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를 명확히 보여줄 증거가 핵심입니다.
- 교섭 과정 기록을 남겨라: 기존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우리 의견이 어떻게 묵살되었는지 증명해야 합니다. 교섭대표노조에 정식으로 안건을 요구한 공문, 회의록, 이메일 등 '우리는 노력했지만 배제당했다'는 기록을 반드시 남겨두세요.
- 전문가의 조력을 구하라: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복잡한 법리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청서 작성부터 노동위원회 심문 과정까지, 노무사와 같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승소 확률을 높이는 길입니다.
[원·하청 담당자를 위한 Q&A] 자주 묻는 질문들
Q1: 교섭단위가 분리되면 무조건 원청이 하청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교섭의무는 직접적인 사용자인 '하청업체'에 있습니다. 하지만 교섭 과정에서 하청업체가 결정할 수 없는 사항(ex: 원청 시설 내 휴게실 설치)이 안건이 되면, 자연스럽게 원청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2: 교섭단위 분리를 막을 방법은 없나요?
A: 일방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노동위원회의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만, 사측은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없다"거나 "하나의 교섭단위로 묶는 것이 안정적 노사관계에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입증해야 합니다.
Q3: 분리 이후, 효율적인 교섭을 위한 사측의 준비사항은 무엇인가요?
A: 각 교섭단위의 특성을 인정하고, 맞춤형 교섭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각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별도의 교섭 실무팀을 구성하는 등 변화된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섭단위 분리는 하청노조에게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를 쥐여준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며,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사 양측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대화의 문이 더 넓게 열렸다는 사실입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 더 나은 일터를 만들어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